이번 앨범인 [빌린 입]에서 이민휘는 복수(複數)의 목소리들이 중첩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아니, 애초에 이민휘의 목소리는 여러 목소리가 웅성거리면서 자아내는 화음 같았다. 앨범의 수록곡인 ‘꿈’은 아예 소곤거림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단 한 명의 목소리인가? 다른 수록곡인 [빌린 입]에서 이민휘는 이렇게 노래한다.


“아 이제 내가 말할게 그대 입과 귀는 그대 것이 아니었다고”


즉 목소리에 따르면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이며 내 목소리조차 내 것이 아니다. 마치 육신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 같은 목소리는 네 이름을 불러보고 어머니에게 거울로 떠난다는 작별 인사를 던지며 아버지에게 혀를 되찾아왔다고 고백한다. ‘부은 발’에서는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에게 구원을 희구하는 노래를 불러본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항상 듣는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데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이 되는 사운드는 소리를 넓게 열어 목소리들이 움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앨범을 다 듣고 나면 어떤 풍경이 보이지만 이 풍경은 직소퍼즐처럼 하나로 맞춰질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빌린 입]이 제시하는, 온전히 구체적이지도 완전히 추상적이지도 않은 이 청각적 풍경은, 복수(複數)의 시공을 관통하는 여정처럼 보인다. 하나가 아닌 여럿. 듣고 말하는 여럿.


강 덕 구 (영화에 대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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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 무키무키만만수의 등장은 독특했다. 일상을 지저귀기에 바쁜 사람들을 뒤에 두고 불온한 긴장감의 존재를 환기시켜 주었다. 이 데뷔 앨범은 사시사철 봄바람 부는 홍대 이외의 장소가 있음을 알려준 낯설고 날 선 앨범이었다. 그 후 팀은 휴지기에 들어갔고 2014년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등의 음악을 작업하며 이민휘(A.K.A. 만수) 명의의 솔로활동을 보여주었다. 이전의 활동과는 사뭇 다른 차분하게 정제된 흐름이 영화와도 좋은 싱크를 보여줬고 이민휘의 새로운 활동에도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2016년 하반기 솔로앨범을 공개한다. 작게나마 이전처럼 어쿠스틱 사운드의 난장을 기대했던 부분을 기세 좋게 배신하는 전개가 더 매력적이다. 알토 플루트의 연주가 무게감을 더하는 ‘빌린 입’, 실로폰과 멜로디카로 침울한 공포를 일으키는 ‘거울’, 현재 가장 존재감 있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인 김나은의 연주가 키를 잡은 아트록 ‘깨진 거울’, 스트링 쿼텟과 함께 녹음한 ‘받아쓰기’의 이 모든 결과물이 이민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다. 고전사운드트랙, 포크, 싸이키델릭, 다소의 현대음악들이 더해진 세계관이 흥미롭다. 거기에 음반의 시작, 중간, 끝에 약간의 신디사이저, 정제된 진행의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곡 ‘돌팔매’, 피아노와 fx에 스캣이 더해진 ‘꿈’, 그리고 종장을 맺는 피아노와 첼로의 협연 ‘침묵의 빛’ 이 세 곡의 연주곡을 삽입해 서-파-급의 전개를 만드는 것도 인상에 남는다. 한 번 방향을 재정비한 이민휘는 이전과 형태는 다르지만 여전히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이 방향을 긍정한다.


박주혁(영세 소상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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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피고 깨닫는 노래들: 이민휘 [빌린 입]


이민휘의 음반 [빌린 입]의 커버에는 소의 머리를 해체 중인 도축업자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날것의 기운이 풀풀 풍기는 이 불그죽죽한 사진이 여러분이 곧 듣게 될 음반에 수록된 부드러운 포크 송과 그리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강렬한 외양을 가진 사진은 실은 수줍다. 음반의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수줍은’ 사진은 음반의 속내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음반의 음악이 내성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내성(內省)은 수줍음과는 조금 다르다. ‘省’은 ‘살피다, 깨닫는다’는 뜻이다. [빌린 입]을 내성적인 포크 음반이라 부르고 싶은 건 그런 이유다.


음반은 느슨한 대칭으로 짜여 있다. 첫 곡 ‘돌팔매’와 마지막 여덟째 곡 ‘침묵의 빛’은 가사가 없다. 둘째 곡 ‘빌린 입’과 일곱째 곡 ‘받아쓰기’는 입과 귀와 혀에 대해 노래한다. ‘빌린 입’에서 화자는 누군가에게 “그대 입과 귀는 그대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언뜻 황정은의 단편을 연상시키는 ‘받아쓰기’에는 혀를 도둑맞은 딸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혀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고발한다. 셋째 곡 ‘거울’의 화자는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거울에 들어간다. 여섯째 곡 ‘깨진 거울’의 주인공은 거울 밖으로 나온 뒤 거울을 깨뜨리며,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기로 결심한다. 음반 중앙에는 두 곡이 위치한다. ‘부은 발’에서, 환속한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면 무너지는 산을 오르며 구원을 추구한다. ‘꿈’에서는 허밍과 더불어 알아듣기 힘든 속삭임이 이어진다.


[빌린 입]에서 이민휘는 언어(귀, 입, 혀), 진실/거짓, 자아(거울)에 대해 숙고한다. 이 주제들은 추상적으로 탐구되기도 하고(‘빌린 입’, ‘거울’), 특정한 장면을 제시하며 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부은 발’, ‘받아쓰기’). 음악은 때로 이를 뒷받침하는 데 만족하는 듯 보이다가도 때로는 전면에 나선다. ‘돌팔매’에서는 어쿠스틱 기타가 간결한 스트로크를 툭툭 던지는 와중에 신디사이저의 앰비언스가 깔리고 드럼은 파문처럼 잘게 퍼진다. ‘빌린 입’의 도톰한 알토 플루트와 ‘부은 발’의 단정한 트럼펫은 침착한 진행에 명암을 부여하고 굴곡을 새긴다. 첼로의 굵은 선율이 이끄는 ‘침묵의 빛’을 듣다 보면 곡에 어울리는 영상이 상상의 저편에서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떤 이는 여기 담긴 음악과 생각이 청자보다는 창작자 자신에게 향하는 경향이 강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할지도 모르겠고, 그 점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은 종종 에고에 부치는 연애편지이며, 포크는 수천 명 앞에 있을 때조차도 자기고백적일 수 있는 장르다. 우리는 뮤지션의 의도가 아니라 그가 만든 음악을 듣는다. 출렁이는 드럼과 낙폭이 큰 멜로디를 현악 4중주와 맞세우는 ‘받아쓰기’나, 뉴에이지풍 피아노 루프를 뱅글뱅글 돌리면서 긴장감을 유도하는 ‘꿈’ 같은 곡들은 인상적인 여운을 남기며, 듣고 난 뒤에도 조금 더 길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30분 남짓한 이 음반 역시 그렇다.


이민휘가 포크 듀오 무키무키만만수의 멤버로 활동했을 당시, 나는 무키무키만만수의 데뷔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냉소적인 의견을 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험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욕망을 수용하도록 만들고야 마는 설득력이 아닐까? (…) ‘인디’, ‘세대’, ‘현실’ 등의 단어를 사용해 비평적으로 ‘상찬’한 뒤 구석에 처박아두는 음반이라는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물론 나는 저 질문을 뮤지션에게 한 게 아니며, 뮤지션 역시 이 음반을 그에 대한 대답으로 여겼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오래 전 허공에 던졌던 질문과, 뮤지션이 긴 고민을 거쳐 스스로에게 한 대답이 시간과 우연의 촘촘한 그물을 통과하여 어느 서늘한 가을날 오후, 마치 애초에 만나기로 약속이라도 했던 양 마주하게 되었다. 신비는 그럴 때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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