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김영글

안유리

유지완

이준하






이 글은 이민휘의 앨범 [빌린 입]의 추천사다. 이 글은 내 얘기로 시작한다. 나는 음악이 무섭다. 내게 있어 음악은 침묵과 같다. 나는 침묵이 무섭다. 그래서 말을 많이 했다. 행여나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곡해하면 어쩌지. 끊임없이 어폐를 줄이고자 했다.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는 그 문장을 수식하는 문장을 잔뜩 늘어놓아야 했다. 아마 지금 이 글에서도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침묵 속에 있으면 고요해지지 않았다. 침묵도 언어니까. 침묵을 해석하기 위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했다. 조용한 사람과 마주 앉으면 끊임없이 말을 했다. 말을 하면 피곤했다. 가끔 내가 할 수 없었던 말을, 말을 하는 과정에서 할 수 있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황홀한 경험들이었다. 나는 시인이다. 시를 쓰면서 나는 종종 황홀했다. 얼마나 황홀했던지, 황홀함이 지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중독자였다. 나는 침묵을 미워했다. 침묵은 내게 황홀함을 주지 않았다. 침묵은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음악은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아주 아주 어렸을 때는 가사가 좋으면 위로를 받았다. 말의 전문가가 되어가면서, 황홀한 순간을 만들 줄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노랫말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 무엇에서도 위로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위로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타인을 동정하고 위로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한 것 같았다. 음악은 위로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었다. 음악은 바다였다. 음악은 모호했다. 음악은 넓었다. 사람들은 음악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부끄러웠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이민휘의 앨범 [빌린 입]을 어떻게 감상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은 이민휘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바로 전 날이었다. 나는 매우 우울했는데, 이민휘와 양꼬치를 먹고 잘 가라고 인사를 하면서 웃고 떠들고 하다 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민휘는 자기가 만든 음악이 있는데 파일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려주지 말라고 했다. 나는 당시에 연희 창작촌이라는 문학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옷만 벗고 침대에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였다. 겨울이었고, 아직 세상이 너무 캄캄했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나는 거기에 없었다. 나는 내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내가 아닐 것만 같았다.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나는 파일을 열었다. 첼로가 연주되었다. 나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눈을 감았다. 피아노가 연주되었다. 슬펐다. 첼로 연주자가 힘차게 활을 밀었고, 당겼고, 나는 놀라서 눈을 떴다. 세상이 온통 푸른빛이었다. 푸른 새벽이었다. 연주는 계속되었다. 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 연주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끝나지 않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했던 것 같다. 연주가 끝났다. 나는 푸른빛이 다 사라질 때까지 반복해서 그 음악을 들었다. 연희 창작촌에서 짐을 뺄 때까지, 알람을 맞춰놓고, 새벽 4시가 되면 그 음악을 들었다. 아직 제목이 없는 음악이었다.


그 음악의 제목은 ‘침묵의 빛’이다. [빌린 입]의 마지막 트랙이다. 이제 ‘침묵의 빛’을 들으면 울지 않는다. 그래도 ‘침묵의 빛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연희 창작촌 206호의 푸른빛 속에 있다. 206의 푸른빛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침묵의 빛’ 속에서, 내가 바로 206의 푸른 새벽이기 때문이다. [빌린 입]이라는 앨범은 1번 트랙부터 8번 트랙까지 순서대로 들어봐야 한다. 라디오 드라마처럼 진행되기 때문이다. 8개의 장으로 구성된 연극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배우는 이민휘다. 나는 그녀가 어디에서 노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민휘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노랫말로 추측하기는 쉬웠다. 거울 속에 있었고, 산을 오르고 있었고, 문지기 앞에 있었고, 꿈속에 있었고, 깨진 거울 앞에 있었고, 열린 창문 앞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어려운 길을 택하고 싶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도식을 세웠다.


공간 = 침묵 = 음악 = 무대


그러니 나는 그녀가 어디에 있었는지 확언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내게 있어 [침묵의 빛]의 무대는 연희 창작촌의 푸른 새벽이지만, 그녀의 무대는 음악이고 침묵이므로. 그리하여, 민휘야 이제 내가 말할게, 잠시 네 입을 빌릴게, 우리가 들려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가 무엇이었는지, 어디였는지,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그런 얘기, 그런 관계, 그런 사랑, 그런 음악일 거라고. 아이고, 내가 또 너무 장황한 글을 써버렸구나. 사람들이 라디오에서 영화 음악을 듣는 것처럼 마음 편히 들어줬으면 좋겠다. 언어는, 침묵은, 음악은 종교가 아니니까.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커다란 문의 저편에는 진리도 없고,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부끄러운 얘기 하나만 할게. 네 입을 빌려서 하는 말이니까 네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너는 ‘부은 발’이라는 노래에서 “진실을 말하면 이 산이 무너진다”고 했지.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오르고 있는 이 산은 무너지지 않을 거야. 우리가 우리이기 때문이지. 그렇지? 좋은 사람들이 네 노래를 듣고 나처럼 위로받기를 바라며.


총총.




김승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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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적이 있다



높은 산을 오르다 폭우를 만난 적이 있다. 팬티까지 흠씬 젖었고, 신발은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집스런 몇몇 등산객들과 함께 무사히 정상까지 올라갔다. 후회하기 시작한 것은 하산 길에서였다.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힘들지만 괜찮은 경험이었다고, 조금만 더 힘내자고 격려를 나누기도 했다. 위험한 능선을 지나 지루한 내리막에 접어들자 발 밑의 진창이 몇 배로 성가셔졌다. 말수가 줄어들더니 이내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떨어트린 채 무거운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빗줄기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나 빗줄기가 아니라 침묵 때문에 질식할 것 같았다. 패잔병들처럼, 그 비참한 침묵만을 공유한 채로 한참을 더 가야 했다.


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산기슭에 붙박인 나무들이 머리채를 흔들며 비에 두들겨맞고 있었다. 사위가 어둑해져, 앞서가는 이들의 실루엣이 유령처럼 보일 때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차츰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전염된 그 지긋지긋한 슬픔의 정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산을 올라갈 때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지만 내려갈 때는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언어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비가 잦아든 검은 하늘 아래 거대한 산이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평지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등을 돌린 채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위로의 눈빛조차 건네지 않았다. 위로라니. 누가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혀가 잘리는 공포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주로 좌절을 느낄 때였다. 삶의 의미가 설명되지 않을 때, 혹은 타인과의 대화가 헛되이 여겨질 때. 그럴 때 나의 상상은 어떻게 전개되든 늘 혀가 잘려나가는 장면으로 귀결되곤 했다. 오염된 말의 세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냉소와 절망, 그 속에서 여전히 언어에 기대고 언어에 잠식당하는 스스로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던 것 같다. 헛된 공상 속에서 벌 받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속한 어리석은 종에 대한 원망과 연민과 죄의식을, 불쌍하게도 모조리 혀에게 부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맛을 느끼고 소리를 내는 신체 기관에 불과한 그 작고 둥근 살덩어리에게. 악몽을 꾸지 않는 방법은 현실 속의 나에게 자꾸 말을 거는 것뿐이었다. 혀로 혀를 더듬어,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2년 전 겨울, 나는 그녀가 우는 걸 본 적이 있다. 이 앨범의 네 번째 트랙 ‘부은 발’을 그 날 처음 들어보았다. 이민휘는 뉴욕으로 떠나기 며칠 전 친구들과 모여 앉은 조그만 실비집에서 무반주로, 아니 약간의 취기를 반주 삼아 그 노래를 불렀었다.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바람에 노래는 중단되었지만, 이후에도 토막 난 멜로디와 노랫말은 나의 뇌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조심하렴”으로 시작하는 후렴구가, 잊을 만하면 불현듯 되살아나 혀끝을 맴돌았다. 책을 읽다가, 화장실에서,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터에서, 죽은 아이들 영정에 국화를 놓기 위해 늘어선 행렬 속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하산길에서.


도시의 풍경은 매일매일 낯빛을 바꾸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이다. 차가운 손잡이에 매달려 있노라면 시커먼 유리창에 휘청거리는 내 모습이 비친다. 각자 몫의 슬픔으로 말이 없는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지난 몇 주간 출퇴근길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이민휘의 노래들을 들었다. 이따금 그날의 눈물이 무슨 의미였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도 한동안 악몽을 꾸었던 것 같다. 혀를 도둑 맞고, 빌리고, 그것으로 기어이 노래하는 아름답고 쓸쓸한 꿈을. 타인의 악몽이 위로가 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행복이 그렇듯이 슬픔도 삶의 어디쯤에선가 빌려온 것이라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때까지 고이 간직할 수밖에 없다. 혀 끝에 올려놓고, 오래오래 더듬을 수밖에 없다.



김영글 (가끔 작가, 현재 월간 <오늘보다>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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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수필가인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이 쓴『감각의 박물학』(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1991)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호주의 원주민 애버리진들은 보이지 않은 길의 미로, 즉 노래의 길을 따라 영토를 나눴으며, 이들은 노래 길을 넘나들며 일상적인 생활을 꾸려나간다. 하나의 거대한 대륙인 호주는 실은 미로와 같은 노래길로 이루어져 있고 애버리진들은 그 길을 따라가며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길 위를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흥얼거림, 흐느낌, 멈춤, 어쩌면 그저 숨일 뿐일지도 모르는 소리들이 허공에 떠도는 공기와 섞여 노래를 만들어 내고, 우연히 그 길에 발을 내디딘 누군가가 그 노래를 이어부르는 장면을 오랫동안 상상했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낯선 세계로 들어섰을 때 잠시 길을 잃더라도 한 발자국 더 내딛을 수 있도록 손짓하는 지도이자 악보가 아닐까. 이민휘의 [빌린 입]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이 장면을 다시금 떠올렸다. 한 곡에서 다음 곡으로, 또 다른 곡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나는 그저 그의 목소리가 연주되는 세계를 따라 나아갔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명 중 신체를 가리키는 말들- 입, 발, 그리고 받아쓰는 손-이 또 다른 말들-돌팔매와 거울, 꿈과 빛-과 만나 당겨졌다 후퇴하고 깨어졌다 사라지는 인상을 받았다. 내 귓가에는 그가 고른 말들의 잔향과 멜로디의 숨소리들이 가득하다. 잠시나마 이민휘가 내게 건넨 지도를 따라 그의 세계에 다녀온 느낌이다.


실은 내가 이민휘를 만난 건 두 번뿐이다. 어느 해 늦가을, 서울보다 일찍 겨울이 찾아든 로테르담에서, 그리고 이듬해 한여름 서울의 한 작은 카페에서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를 친숙하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내 귀가 기억하는 그의 목소리와 음악 때문일 것이다.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장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의 목소리를 지금, 내 곁으로 불러낼 수 있으므로. 그렇게 이민휘는 또 하나의 지도를 들고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가 건넨 지도를 들고 노래 길을 따라 걸어보자. 그 노래들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불려지고 이어지기를. 사라지고 기억되기를.




안 유 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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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입이 없는 것들


1. 어떤 책은 내 것이 아닌데 나에게 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선물한 책을 나는 읽고 싶어서 빌렸고, 어쩌다 보니 돌려주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있는 ‘아, 입이 없는 것들’ 이라는 시집의 첫 페이지에는 “OOO 22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당~ OO가” 라고 적혀있다.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그 페이지를 마주쳤다. 이성복의 초록색 시집 첫 페이지는 나에게 어떤 시간들을 불러왔다. 처음 들었을 때, [빌린 입]은 오랫동안 빌린 책의 첫 페이지 같았다.


2. 해소되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입이 없는 채로 말을 움켜쥐고 있는 그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라고 [빌린 입]은 묻고 있는 것 같다.


3. [빌린 입]의 음악은 여러 시간을 흐르게 두고 있다. 그 시간들은 나른한 가운데 날이 서 있다. 침묵 속에 남아 있던 것들이 기어 나와서 아, 입이 없는 것들이라는 탄식 위에 말을 뱉어낸다.


4.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시간 속에 들어있기도 하고, 여기를 살아온 모두가 겪은 일들 속에 있기도 하다. 죽었거나, 입을 잃어버렸거나. 그런데 할 말이 너무나 많은 채로 죽었거나 입을 잃어버렸다.


입이 없는 것들이 말할 수 있도록 입을 빌려주는 것은 여러 소리가 만나고 말들이 뒤섞이는 순간이고, 그런 순간을 음악이나 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빌린 입]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서 그런 순간을 만난다면, 이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티고 싸울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 지 완 (악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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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음악을 위하여


만약 여기가 지인들이 모인 파티 자리이고, 들뜬 분위기 가운데 내게 ‘축하의 한 마디’가 주어졌다면 다소 낯부끄러우면서 감동적인 연설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색한 분위기를 건배 제창으로 일소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파티의 주인공과 필자 사이의 친분을 푼수처럼 늘어놓는 것은 이 지면에 합당하지 않음을 나는 안다. 동시에 수록된 곡들을 하나하나 비평적 언술로 소개하는, 이를테면 교수식 잡담에도 분명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입’과 ‘이해’의 지평을 횡단하는 ‘추천사’는 가능할까?) 하여 다음의 글은 좁은 잠수함 복도를 지나는 수병(水兵)의 힘겨운 행보 내지 ‘요청’ 정도가 될 것이다.


김승옥이 들려주는 기기묘묘한 우화의 주인공은 도저하게 끓어오르는 힘을 발산해야 하는 역사(力士)다. 그는 힘을 이용해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대신 한밤중의 성벽을 찾아 돌덩이를 들어올리기로 한다. 선조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라지만 그것은 정말 의미라곤 찾기 힘든 행위다. 생산적이지도 않고, 모종의 격식도 없다. 마치 바위를 들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혹은 바위를 드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양 그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때 얼싸매는 바위는 역사로서 그를 추동하는 매개이자 역사의 삶을 타당하게 하는 증명이 된다. 바위를 드는 행위는 그를 주체화시킨다. 그렇게 ‘막노동꾼 서씨’는 한낱 어둠에서 분리되어 나와 ‘역사’로 도드라진다.


이소라는 동시대의 보기 드문, 장르를 편식하지 않는 테크니션이면서 자신의 음악적 영지를 구축하고, 또 이를 성공적으로 지켜낸 뮤지션일 것이다. 음악과 삶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집요한 노력들, 능수능란하게 통제되는 ‘신체의 악기화’, 대중문화에 자리한 ‘구별되는 주체’ 등은 그녀가 위대한 ‘역사(力士)’임에 대한 방증이다. 때문에 이소라에겐 근대의 영광된 무대를 마지막으로 지키는 예술가의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제는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다.” 역사 이소라가 들어 올린 바위는 진작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최소한의 숨통이 주어졌던 이소라의 구십 년대와 달리 오늘날의 소비 사회는 완성되었고, 음악이 이데올로기적 사물로 포획되기까지 짧게나마 존재했던 ‘진공’ 상태는 사라졌다. 지금 우리는 날숨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들숨으로 돌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한계 없는 기호화의 함열(陷裂) 중에 있다. 이소라는 우리들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다시 반복되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들뢰즈가 아파트 아래로 떨어지며 말했다시피, “이제는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닌 것이다.


이민휘의 [빌린 입]은 끝과 끝이 연결된 내부순환도로를 연상케 한다. 30분 남짓으로 구성된 본 앨범은 ‘개별적인 곡들의 모음’ 이라기보다 하나의 도시 테두리를 에워싸고 빙빙 도는 ‘음악적 헤맴’처럼 느껴지는데, 그건 어쩌면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일관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읊조리는 목소리와 절제된, 하지만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하는 연주들은 처연함이 짙은 정서의 대기(大氣) 속에 잠겨 있다. 이는 다소 고집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며, 그 중심엔 청자의 접근을 머뭇거리게 하는 폐쇄적 면모가 있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이것은 엄연한 월권행위다. 나는 [빌린 입]을 매개로 청자와 이민휘가 나누는 ‘고유한’ 대화에 어떤 선입견도 보태고 싶지 않다. (그건 이미 현대의 이데올로기로 충분하다) ‘음악’에 대한 비평적 참견 대신 ‘음악적인 것’에 대한 언급으로 이 해괴망측한 추천사를 갈음하고자 한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문장이나 기분, 사건이나 표정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많은 경우 강박처럼 뇌 내를 떠돌며 세계와의 접촉을 방해하고 그 결과 활력을 얻지 못하게 한다. 마침 나를 사로잡은 그 무엇이 나의 근본적인 상처의 ‘시금석 기억’을 건들면 일은 더욱 복잡해진다. 피할수록 견고해지는 기억의 메커니즘은 종양처럼 강박을 내 안에 부착시킨다.


‘사로잡힘’에 대한 결과로써 음악은 두 가지다. 1) 사로잡은 그 무엇이 음악적 사물로 형상화되거나 2) 사로잡힘 자체를 그만두는 것이다. 내부순환도로의 비유를 사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한밤중의 텅 빈 도로를 달리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지만 그것이 세계 없는 자폐적 환상임을 깨닫는 순간은 견디기 어렵게 공허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한한 전진만을 얘기해왔다... 오로지 상승만을 믿는 진취적인 사람들의 ‘전진’이 실은 내부순환도로에서의 레이스였다면, 중요한 것은 ‘그만두기’일 것이다. 사로잡힘은 산만한 의식을 음악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지향하는 ‘각광’으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사로잡힘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사로잡힘을 그만두고 다음 사로잡힘을 기다리는 것일 게다. 다행히 내부순환도로에는 빠져나갈 수 있는 간선도로들이 있다.


[빌린 입]의 인상적인 일관성은 내부순환도로의 공허한 레이스가 아닌, 해안을 무수히 쓰다듬고 스며드는, 다시 물러나고 다시 일어오는 파도로도 가능하다. 파도의 반복 운동처럼 [빌린 입]의 음악들은 매번 다른 형태와 모양으로 나타났다가 소멸된다. (그것은 기억에 접촉하고 작용하기 수월한 대기적인 구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찬 바람이 촉발하는 기억들의 연쇄처럼) 우리는 파도의 근원이 어디인지 모른다. 하지만 파도가 계속 밀려온다는 사실은 분명히 안다. 파도의 소멸은 항구적인 ‘그만두기’가 아니라 다음 파도를 위한 ‘포개어짐’이다. 해변에 포개어진 파도의 흔적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는 다음 파도를 만날 수 있다.


아마 이천십 년의 내 생일로 기억되는데, 쌀쌀한 가을날 우리는 난방이라곤 조금도 기능하지 않는 학교 건물에서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그녀는 탁한 알전구 불빛 아래서 노래를 불렀다. 이것은 내가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역사성(力士적이면서 歷史적인)은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순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접촉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힘. 학생 회관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를 불렀을 때, 이민휘는 역사였고 그녀가 발생시킨 순간, 번쩍 들어 올린 바위, 은 이데올로기 이전의 들숨이었다. 음악적 사물로 탈바꿈하여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분명한 바는 이데올로기의 세탁에서 안전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 짧은 틈새를 훌륭히 채웠던 이소라의 무대가 끝났어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면, 우리는 이데올로기가 자기와 함께 있는 습관을 가져보라며 붙잡는 손길을 한사코 뿌리치고 끊임없이 소음을 일으켜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사물로 고착됨을 응전에 대한 또 다른 응전으로 연기(延期)하는 것. 누차 포개어지는 파도처럼 이때 ‘음악’은 ‘음악적인 것’의 환유, 즉 ‘음악하기’로 나아간다.


지나간 계절이 그렇듯이 아름다운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덧없음을 알면서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머무는 그것을 요청한다. 이데올로기 이전의 모든 끌어안음, 함께 있음, 맞잡음, 들숨, 그러니까 우리들의 벨 에포크에게, 순간이 순간을 낳는 종묘상이 되어 달라고, 이데올로기에 반사된 현실을 침몰시키는 파도가 되어 달라고, 말이다.




이 준 하 (前 화교문화)